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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국내에 빈대가 출몰해서 떠들썩했습니다. 그래서 최근에는 빈대 출몰 방지를 위해 서울 지하철의 직물형 의자를 2029년까지 강화 플라스틱 의자로 순차적으로 교체할 예정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해충을 방지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이 필요한데 우리가 꼭 해야 할 일은 위생과 청결 관리, 철저한 방역입니다. 우리나라 거주 환경을 깨끗하게 하는데 앞장선 기업 세스코는   K-방역의 대표주자입니다.  대한민국 최초의 해충 방지 기업 세스코의 창업자인 쥐 박사 전순표 회장의 창업 스토리와 세스코 멤버스 존,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대응 등을 알아보겠습니다.

     

    세스코

     

    1. 창업자 전순표 회장

    강원도 정선에서 태어난 전순표 회장은 대학원을 졸업한 후 1960년부터 농림부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식량창고를 관리하게 됩니다. 그는 정부의 식량창고 문을 열었을 때 쥐들이 귀한 양곡을 먹어 치우고 있는 모습을 보고 경악을 금치 못합니다. 현장 담당자들은 쥐를 아무리 쫒아도 다시 오기 때문에 뾰족한 방법이 없다고 난색을 보였습니다. 전국에서 쥐가 하루에 먹어 치운 쌀의 양은 1200톤으로, 연간으로 계산하면 국내 쌀 생산량의 10%에 달하는 엄청난 양이었습니다. 당시 정부는 쌀 생산 증대를 위해 노력했는데, 전순표는 '힘들게 쌀을 증산해 놓고 창고에서 쥐한테 먹이느니 먼저 쥐를 잡는 연구를 해야겠다'라고 마음먹습니다. 하지만 1960년대 국내에는 쥐에 대한 연구자료도 없었고, 쥐약도 많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때마침 영국에서 양곡 저장 피해 방지에 대한 연구를 할 국비장학생을 모집합니다. 영국도 기후가 좋지 않아서 농사를 짓는 것보다 양곡을 보관하는 일에 더 큰 노력을 기울였고, 쥐 잡는 기술도 발달했습니다. 그래서 전순표는 장학생으로 합격해 영국으로 유학을 떠납니다. 

     

    2. 우리나라 최초의 쥐 박사 탄생

    전준표는 2년간 영국에서 공부하고 돌아와 농림부에 복귀합니다. 이때 전순표가 '전 국민의 쥐 잡는 날'을 만들었습니다. 한 달에 한 번씩 쥐 잡는 날을 만들어서 곳곳에 쥐약을 놓고, 끓는 물을 하수구에 붓기도 했습니다. 전순표는 농림부 연구원으로 국내의 쥐를 연구했습니다. 1971년부터 2년간 전국에서 3천 마리의 쥐를 수집해서 한 마리 한 마리 체격을 측정하고 해부까지 합니다. 한국산 집쥐의 생태 및 방재에 관한 연구로 농학 박사 학위를 취득합니다. 우리나라 최초의 쥐 박사가 탄생한 것입니다. 하지만 전순표 박사는 공무원이 할 수 있는 일의 한계를 체감합니다. 현장에서 쥐를 박멸시키는 게 아니라 행정만 담당해야 했기 때문입니다.

     

    3. 전우방제 설립

    전순표는 공무원을 그만두고 1976년 국내 최초의 쥐 잡는 회사를 설립합니다. '전 우주를 방제하겠다'는 뜻의 전우방제 주식회사였습니다. 처음에는 식품 공장이나 큰 마트를 찾아다니며 영업을 했지만, 100원이면 쥐약을 살 수 있는데 뭐 하러 사람에게 맡기냐며 사람들은 시큰둥했습니다. 그러다 여의도의 한양 쇼핑몰을 찾아가 3개월 안에 쥐를 없애지 못하면 돈을 받지 않겠다고 약속했고 3달 만에 쥐는 모두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이때 울산의 한 석유화학 공장에서 쥐가 일으킨 전기 합선 사건으로 100억 원대의 피해를 보는 화재가 발생합니다. 그러면서 기업들은 점점 전우방제를 찾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우리나라는 1980년대 아시안 게임과 서울올림픽, 1993년 대전엑스포까지 국제 행사를 연달아 유치했습니다. 하지만 당시 정부는 해충 방제 대책이 전혀 없었습니다. 전순표는 조직 위원회를 찾아가서 방재 작업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외국인과 선수들이 묵는 숙소와 식당을 모두 방제하면서 깨끗한 한국의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이후 생활 수준이 향상되고, 대형 건물이 들어서면서 쥐는 많이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국제 교류가 늘어나고 수입이 늘어나면서 새로운 골칫거리인 바퀴벌레가 등장합니다. 바퀴벌레는 한 마리가 1년에 4만 개의 알을 낳기 때문에 번식이 굉장히 빠릅니다. 그래서 대형 빌딩과 호텔, 공항, 음식점에서 전우방제에 바퀴벌레 방제를 요청했습니다. 이때 미국에서 개발된 약제는 짜놓으면 해충이 먹는 방식이었는데 기존의 살충제와 비교도 안 되게 효과가 좋았습니다. 기존에 연막이나 스프레이 방식은 손님이 없는 야간에만 작업할 수 있었는데 약제를 짜 놓는 방법은 언제든 가능했습니다. 또한 작업자들이 방역복을 입지 않아도 되었고, 독한 약을 묻히거나 들이마실 일도 없어졌습니다. 그러나 이후 미국산 약제를 먹고도 살아남는 돌연변이 바퀴벌레가 생겨났고, 결국 전우방재는 자체적으로 바퀴벌레 먹이 약제 개발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같은 바퀴벌레 종이라고 해도 서식지, 산란기, 계절 등에 따라 먹는 약이 달랐기 때문에 전우방제의 연구원들은 다양한 종류의 약제를 개발합니다. 식약처에 등록한 약품의 종류만 70가지로 731종의 바퀴벌레에 대한 방제 시스템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4. 창업 20주년 세스코의 탄생과 성장

    해충 방제 시장을 석권한 전우방제는 1990년대부터는 단지 쥐 잡는 회사가 아니라 더 체계적인 운영을 할 필요성을 느끼게 됩니다. 이때 등장한 창업주 2세 전찬혁 사장은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며, 아버지 회사에서 쥐와 바퀴벌레를 잡는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런데 막상 일을 해보니 살충제가 너무 독해서 토하기도 했고, 고객들은 해충 잡는 일을 한다며 무시하기도 했습니다. 직원들은 일도 고되고, 인정도 못 받으니 잦은 퇴사가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전찬혁은 이 문제를 개선해보고 싶다는 꿈을 갖고 MBA 유학을 다녀와 아버지 회사에 입사합니다. 그는 '10년 후에는 회사를 세계 최고 수준으로 발전시키겠다'는 결심을 합니다. 얼마 후 전우방제는 회사의 창업 20주년을 맞아 사명을 세스코로 바꿉니다. 앞으로는 쥐 나 바퀴벌레뿐만 아니라 환경에 관한 모든 영역에 진출하겠다는 의지를 다졌습니다. 전찬혁 사장은 회사의 방제 작업을 모두 매뉴얼화하고 서비스 표준을 만듭니다. 또 현장의 경험과 지식을 축적할 수 있는 IT 시스템을 구축합니다. 무엇보다 소독 통을 들고 벌레를 잡으러 다니는 직원들, 세스코맨의 이미지를 개선하기 위해 20억 원을 들여 TV 광고도 시작합니다. 이런 노력의 결과 세스코의 인기는 높아졌습니다. 2001년 8월 세스코 홈페이지 서버가 다운되는 일이 발생합니다. 그전에는 하루에 평균 30~40명의 접속자에 불과했는데 갑자기 하루 10만 명의 접속자가 몰리게 된 것입니다. 세스코의 질문 게시판에는 어떤 질문을 올려도 성심성의껏 답을 올려준다는 소문이 난 것입니다. 하루 천 여건의 질문이 쏟아졌지만, 세스코의 연구원 10명이 정성스러운 답변을 올려줘서 인터넷에 팬클럽이 생길 정도였습니다. 또한 세스코를 소재로 영화를 찍고 싶다는 제의도 들어옵니다. 세스코맨을 좋아하게 된 톱스타와의 삼각관계를 그린 영화로 배우 김정은, 김상경이 주연한 '내 남자의 로맨스'는 120만 관객을 동원합니다. 홈페이지 게시판의 질문에 답변을 정성스럽게 올린 결과로 20억 원의 TV 광고보다 더 큰 효과를 얻게 됩니다. 2002년에 연 매출 176억 원이었던 세스코는 2021년 3850억으로 20배 가까이 성장했습니다. 전찬혁 사장이 자신의 결심대로 작은 방재회사를 중견기업으로 성장시킨 것입니다.

     

    5. 세스코 멤버스 존

    어느 날 유명한 설렁탕집에서 세스코에 요청이 들어옵니다. 평소 전찬혁 사장의 단골집이었기 때문에 그도 현장 조사에 참여합니다. 그런데 밤이 되니 바닥이 바퀴벌레 천지가 되는 것을 보고 경악을 합니다. 이를 계기로 전찬혁 사장은 고객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전체를 해충 안심 공간으로 만들겠다는 목표를 갖게 됩니다. 적어도 세스코 멤버스 존 스티커가 붙어 있는 곳만큼은 해충 없는 안전지대로 지키기로 합니다. 세스코 멤버스 존은 엄격한 기준을 마련하고, 이 기준에 부합한 업소에만 스티커를 붙였습니다. 이 마크를 찍어서 인증하면 즉석에서 경품을 제공하는 이벤트도 실시했는데 그 결과 4년 만에 95% 시민들이 세스코 멤버스 존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공항, 대형빌딩, 쇼핑몰 등이 앞다투어 세스코 멤버스 존을 신청하였습니다.

     

    6.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세스코는 2000년대 초반부터 바이러스와 박테리아에 대비해 왔습니다. 엘리베이터, 공중화장실 등 공공장소의 오염도를 줄이는 방법을 찾고 있었습니다. 공기에 항균물질을 분사하는 기계를 연구 개발하던 중 2003년 사스가 터집니다. 사스는 백신이나 예방약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개인위생을 철저히 하는 방법밖에 없었습니다. 세스코는 연구 개발하던 분사기에 항세균성 약제를 넣어 공공기관의 위생 의뢰에 대응했습니다. 2009년 멕시코에서 신종플루가 발원했을 때도 담당 공간에 공간 방향 살균기, 거품 손세정기, 손소독제 등을 설치하며 항세균 서비스를 제공했습니다. 이를 계기로 2015년에는 바이러스, 박테리아 전문프로그램을 선보였습니다. 메르스와 코로나 때도 혼란이 매우 컸지만, 세스코는 이미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그래서 병원, 공공장소 등 바이러스의 최전선에 투입되어 방역 작업을 해 나갔고, 공중위생에 많은 기여를 했습니다. 

     

    시대가 지나면서 우리의 위생과 건강을 위협하는 것들이 계속 바뀌고 있습니다. 빈대, 러브버그 등이 우리 생활을 별안간 습격하기도 합니다. 또 먹는 음식, 마시는 물, 숨 쉬는 공기 등 예상치 못한 곳에서 환경 이슈가 발생하고 있는데 세스코가 이러한 데이터를 계속 연구하고 축적하면서 우리의 생활환경을 계속 지켜주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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