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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심은 다양한 라면과 간편 식품을 제조하여 국내외 시장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열풍인 신라면을 만든 기업, 내수를 넘어 수출로 성장하고 있는 농심. 최근 영화 기생충을 통해 유명해진 짜파구리, 드라마 오징어 게임에서 이정재의 생라면 먹방, BTS의 지민이 좋아하는 불닭볶음면 덕분에 K 라면의 세계화가 진행 중입니다. 그 가운데 농심의 성장세가 심상치 않습니다. 그동안 미국의 라면 시장은 일본 기업이 꽉 잡고 있었는데, 최근 농심이 시장 점유율 2위로 올라섰습니다. 외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은 농심의 창업과 시장 점유율, 라면 수출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1. 롯데 라면에서 농심의 창업
롯데와 농심의 창업주는 형제입니다. 농심은 롯데의 창업주 신격호 회장의 넷째 동생 신춘호 회장이 설립합니다. 어린 시절 돈을 벌겠다고 일본으로 떠난 큰 형을 대신하여 신춘호는 고등학교 때부터 자갈치 시장에서 장사를 하며 집안 살림을 보탭니다. 그러다가 1958년 신격호 회장은 롯데를 창업하고 자리를 잡은 후 동생 신춘호를 일본으로 불러 무역부장 자리를 맡깁니다. 형의 사업을 돕던 신춘호도 자기 사업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신춘호는 일본에서 눈여겨봤던 인스턴트 라면으로 한국에서 사업을 하고 싶다고 말하지만, 형은 반대합니다. 신격호 회장은 한국에서 이미 삼양이 국내 최초로 인스턴트 라면을 출시했기 때문에, 후발주자로 라면 사업을 시작하는 건 어렵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신춘호는 형의 인정을 받지 못하자 자신의 힘으로 1965년 롯데 공업 주식회사를 세우고 라면을 출시합니다. 처음에는 삼양라면을 따라가는 후발주자의 입지에서 시작했지만, 한국의 라면 시장을 혁신하고자 하는 목표를 갖고 제품 개발에 매진합니다. 국내 최초로 인스턴트 짜장 라면을 만들었지만, 라면이 대중화되지 않아 몇 년간은 실패를 거듭합니다. 신춘호 회장은 전국에 있는 곰탕집을 찾아다니며 라면으로 만들 수 있게 연구한 끝에 1970년 소고기 라면을 출시하였고 큰 인기를 얻게 됩니다. 때마침 정부의 혼분식 장려 운동이 추진되었고, 롯데공업은 라면 시장에서 강력한 입지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라면 사업이 실패할 경우를 대비해 준비했던 새우깡도 주목받으며 스낵 사업에서도 성공을 거두기 시작했습니다. 롯데 공업은 라면과 스낵 사업을 통해 성장을 지속했습니다. 반대했던 라면 사업으로 동생이 성공을 거두고, 형의 사업인 롯데 제과와 겹치는 스낵사업에서도 승승장구하자 형은 심기가 불편해집니다. 급기야 형 신격호 회장은 동생의 사업장에서 '롯데'라는 사명을 사용하지 못하도록 합니다. 신춘호 회장은 이때 사명을 '농심'으로 교체하고 롯데와는 단절을 선언합니다.
2. 신라면으로 라면시장 석권
1980년대 중반까지 라면 시장의 선두는 삼양이 지켜왔습니다. 하지만 농심은 끊임 없이 라면 개발에 몰두했고, 스낵으로 벌어들인 수익도 다시 라면 연구에 투자합니다. 라면은 수프 맛이 중요하다며 경기도 안성에 라면수프 공장을 세웠고, 안성탕면, 짜파게티, 너구리를 잇달아 출시하며 모두 히트를 칩니다. 당시 라면은 매우면 안 된다는 생각이 보편적이었지만, 매운맛을 전면에 내세운 신라면이 출시되면서 라면 시장에서 절대강자로 자리매김합니다. 농심은 1980년대 후반부터 한국의 라면 시장 점유율 1위를 오랫동안 유지했습니다. 신라면과 농심은 승승장구합니다. 특히 라면은 경기가 어려울 때 더 판매가 잘되는 특성이 있어서 IMF 외환 위기 때는 판매량이 더 늘어서 1998년 농심은 라면 업계 최초로 매출 1조를 돌파합니다. 신라면은 1년에 8억 개가 판매되며 오랫동안 사랑받았습니다. 세계적으로 라면을 가장 많이 먹는 나라는 베트남이고, 2위는 한국으로 1년에 1인 평균 73개의 라면을 먹는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하지만 건강을 중시하는 추세 때문에 라면의 매출이 감소하기 시작합니다. 또한 2010년대 들어 경쟁 업체들이 다양한 신제품을 출시하며 추격해 오자 신라면의 점유율이 점차 감소하였습니다. 한때 시장 점유율 53%까지 차지하던 신라면은 현재 16% 정도로 떨어졌습니다.
3. K 라면을 대표하는 수출 기업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심은 지속적인 신제품 개발과 해외 시장 개척을 통해 성장을 이어 나갔습니다. 신라면은 전 세계 70여개 국가에 수출되고 있어서, 어느 나라의 마트에 가도 신라면을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신라면은 1990년 상하이에 공장을 설립하고 중국에 유통을 시작합니다. 당시 중국에는 대만 브랜드 강사보 라면이 1위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강사보 라면은 언제 어디서나 먹을 수 있는 보급형 라면이라면, 농심 신라면은 먹고 싶지만 비싸서 아껴먹는 프리미엄 라면으로 통했습니다. 또 미국 LA도 공장을 세우고 북미에서도 유통을 시작했습니다. 그동안은 아시아권 이민자들이 주로 찾는 라면이었지만, 지금은 누구나 점심 대용으로 신라면을 찾고 있습니다. 그 결과 2022년에는 북미 매출이 전년보다 24% 증가했습니다. 농심에서 해외 매출은 30%를 차지하고 있고, 덕분에 매출 3조 원을 돌파하여 농심은 대기업 반열에 올랐습니다. 이는 농심의 글로벌 전략이 성과를 거두었음을 나타냅니다.
농심은 음식 문화를 넓히기 위해 외식업, 음식문화 전문도서관 등 다양한 분야에도 진출하였습니다. 최근에는 생수 사업과 호텔 농심의 객실사업부를 운영하며 다양한 사업 영역에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2022년에는 구미에서 라면 축제로 성공을 거두었으며, 이를 통해 지역사회와의 교류와 홍보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농심은 신춘호의 결단력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지속적인 성장과 발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