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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기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여주인공 김지원의 캐릭터가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재벌 3세로 태어나 모든 걸 다 가진 그녀는 평사원인 김수현을 만나 결혼하고, 백화점을 맡아서 극적으로 성장시키는 사업수완을 보여줍니다. 이 여주인공을 보며 시청자들은 호텔 신라의 이부진 사장이 모티브가 아니냐고 추측합니다. 이부진 사장이 이끄는 호텔신라의 설립 배경과 면세 사업, 사회공헌 활동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호텔 신라 전경

     

    1. 호텔 신라의 설립 배경

    1972년 박정희 대통령이 삼성의 이병철 회장과 롯데의 신격호 회장 등을 호출합니다. 대통령은 정부가 운영하던 호텔을 매입해서 운영하라는 지시를 내립니다. 이때까지만 해도 일제시대에 세워진 호텔을 정부의 관광공사가 인수해서 운영하고 있었는데, 호텔은 고도의 서비스가 요구되고 트렌드도 앞서나가야 했지만, 정부 기관의 주먹구구식의 운영으로 적자가 만연했던 상황입니다. 이 당시 대기업들은 제조업과 중공업에 집중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호텔 사업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 더구나 적자 호텔을 인수하라고 하니 기업들은 꺼릴 수밖에 없었는데 정부의 압박으로 할 수 없이 호텔을 인수하게 됩니다. 롯데는 반도 호텔을 인수하여 롯데 호텔로 만들고, 선경이었던 SK는 워커힐 호텔로, 삼성은 남산 기슭에 자리 잡고 있던 영빈관을 인수합니다. 원래 신라호텔의 자리는 일제강점기였던 1920년대 일본이 이토 히로부미를 기리기 위해 박문사를 설립했던 곳입니다. 광복 후 박문사를 대차게 헐어내고 1967년 외국 국빈을 대접하기 위한 숙소인 영빈관을 지었습니다. 정부는 이곳을 삼성에 넘기면서 1,000명 규모의 국제회의를 개최할 수 있는 호텔을 지어달라고 부탁합니다. 억지로 떠안기는 했지만, 이병철 회장은 탁월한 사업가의 기질을 발휘하여 세계 일류의 호텔로 만들기로 다짐합니다. 이병철 회장은 일본 오쿠라 호텔의 노다 회장을 찾아가 노하우를 묻습니다. 노다 회장은 "우리 호텔은 헤이안 시대를 그대로 재연해서 고대 일본의 정취를 느낄 수 있습니다. 호텔을 세우신다면 한국의 전통미와 예술을 내세워야 외국인들을 사로잡을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조언을 해줍니다. 원래는 호텔을 현대적이고 최신식으로 지어서 여행객들에게 화려함을 보여주고 싶었지만, 일본에서 돌아온 이병철 회장은 한국의 전통미가 느껴지는 '신라'라는 단어를 붙여 호텔 이름을 '신라 호텔'로 짓게 됩니다. 삼국시대를 하나로 통일하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신라의 화려하고 우아한 아름다움이 한국을 가장 대표할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1973년 신라호텔은 지상 26층, 지하 3층 규모로 착공이 시작됩니다. 그러나 오일쇼크가 닥치고 환율 치솟으며 공사가 3년 동안 중단된 데다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병철 회장이 위암 진단을 받게 됩니다.

     

    2. 호텔 신라의 개장

    착공한 지 6년 만인 1979년 우여곡절 끝에 신라호텔이 문을 열게 됩니다. 외부는 붉은 타일로 외장을 한 신식 건물이었지만, 내부는 신라 전통의 그림과 문양들로 아름답게 장식했고, 샹들리에는 신라 왕의 금띠를 둘러 왕궁의 느낌이 들게 했습니다. 옆에는 한옥인 영빈관을 그대로 두어 연회장으로 사용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신라 호텔의 문고리 하나하나까지 직접 챙겼고, 호텔의 모든 문화를 바꾼다는 모토로 제공하는 서비스 수준을 높였습니다. 그중에서도 특히 제공하는 음식에 매우 신경을 썼습니다. 그래서 신라호텔의 조리 부장은 틈만 나면 요리 연수를 받으로 떠나야 했습니다. 전국의 국숫집, 복집 등 최고의 요리사로부터 비법을 전수받고, 특히 일본의 한 초밥집을 여러 차례 오가며 연수를 받아야 했습니다. 어느 날, 밥 무게와 생선 무게를 각각 15g으로 하고, 온도를 적당히 맞춰 신경 써서 만든 초밥을 내어 온 조리부장에게 초밥 애호가 이병철 회장은 "초밥 한 점에 밥알은 몇 개입니까?"라고 질문을 합니다. 당황한 조리부장은 즉시 젓가락을 가지고 와서 초밥의 밥알을 하나하나 세어보니 320알이었습니다. 이병철 회장은 "낮에는 밥으로 먹기 때문에 밥알이 320개가 적당하지만, 저녁에는 술안주로 먹기 좋게 280알이 정석입니다."라고 조언할 만큼 메뉴 하나하나에 세심한 신경을 쓸 만큼 그는 호텔 사업에 진심을 다했습니다.

     

    3. 신라의 면세점 사업 확장

    신라 호텔의 사업을 꽃 피운 사람은 다름 아닌 이건희 회장의 장녀 이부진 사장입니다. 승부 근성과 완벽주의까지 이건희 회장을 쏙 빼닮은 이부진은 연세대학교 아동학과를 졸업하고 1995년 삼성 복지재단에 평사원으로 입사하여 에버랜드, 제일모직, 삼성물산 등 삼성 계열사에서 두루 근무하고, 특히 호텔 신라에서 경영 능력을 보여주면서 오빠 이재용보다 빠른 등기 임원이 되었습니다. 호텔 경영도 세심하게 잘했지만 이부진의 역량이 드러난 건 신라호텔의 면세 사업이었습니다. 초창기 면세점은 호텔의 기념품 매장에 불과했지만, 1986년 신라호텔의 한편에 외국인들이 쇼핑을 할 수 있는 작은 면세점 건물을 오픈합니다. 이부진 사장은 면세점 사업을 꽃피우게 됩니다. 면세점은 해외의 유명 브랜드를 국내에 소개하고, 유행을 선도해야 하므로 이부진 사장의 패션 감각은 남다르고, 해외 패션계의 인맥도 대단합니다. 명품 브랜드 루이비통이 국내의 1위 면세 사업자인 롯데 면세점에 입점이 거의 확정적이었을 때, 루이비통이 소속된 기업 LVMH의 아르노 회장이 방한을 하게 됩니다. 롯데는 잠실의 집무실로 아르노 회장을 초청했지만, 이부진 사장은 공항으로 직접 나가 아르노 회장을 마중합니다. 아르노 회장의 옆에서 안내하며 인천공항 이용객 분석을 토대로 브리핑을 진행, 이런 노력으로 루이비통은 롯데가 아닌 신라에 세계 최초로 면세점 입점을 하게 됩니다. 오픈 1년 만에 단일매장 연 매출 1080억원으로 최고 기록을 달성하고, 이를 계기로 전무였던 이부진은 부사장직을 건너뛰고 사장직으로 승진하게 됩니다.

     

    4. 호텔 신라의 사회 공헌 활동

    신라는 1990년 제주에 두 번째 호텔을 오픈하고, 제주 최고의 호텔로 사랑받게 되자 이를 지역사회에 환원하고자 현지 소상공인들의 외식 산업을 돕기로 합니다. <맛있는 제주 만들기, 맛 제주 프로젝트>를 통해 제주 신라 호텔의 쉐프들이 10년 넘게 주변 소상공인들에게 무료로 맞춤 컨설팅과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있습니다. 메뉴 조리법 뿐만 아니라 손님 응대와 주방 설비까지 업그레이드 해주었고, 그동안 26개의 가게를 컨설팅해서 재개장을 도왔습니다. 가게가 재단장해서 오픈할 때는 이부진 사장이 꼭 참석해서 홍보역할도 해주고 있습니다. 신라 호텔의 사회공헌 활동은 영역을 확장해 해외까지 넓혀 가게 됩니다. 신라호텔 셰프와 신라면세점 임직원 등 약 30여 명은 최근 중국 길림성 소도시에 있는 초등학교를 방문하여 사회공헌활동을 실시했습니다. 어린이들을 위해 화장실 개조 기공식, 한국 간식 문화 체험 활동, 학교 외관 벽화 그리기, 기증 물품 전달 등이 있었습니다. 이번 활동은 신라호텔의 사회적 책임감을 나타내며, 앞으로도 다양한 사회공헌활동을 전개할 계획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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