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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레이디 가가와 알파치노 주연의 '하우스 오브 구찌'라는 영화를 개봉했을 만큼 스펙터클한 역사를 가진 구찌. 영화 이상의 흥미진진한 구찌 가문과 브랜드의 역사를 소개합니다.
1. 창업자 구찌오 구찌
구찌의 창업자 구찌오 구찌는 1881년 이탈리아 피렌체에서 태어납니다. 부모님이 밀짚모자 사업을 하다가 파산하면서 구찌오는 도망치듯 고향을 떠나 영국 런던으로 갑니다. 그는 런던 사교계의 장이었던 사보이 호텔에서 벨보이를 하며 귀족 손님의 짐을 나르는 일을 합니다. 상류층 가문의 문장을 새긴 가죽 트렁크와 값비싼 의상을 보며 안목을 키우게 됩니다. 4년 동안 돈을 번 후 고향 피렌체로 돌아가 가죽 공방을 엽니다. 남다른 안목과 친절함, 성실함으로 구찌오의 가게는 점점 커졌습니다. 이때 사업에 가장 흥미가 있었던 아들 알도 구찌가 사업을 돕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으로 이탈리아는 수입의 길이 막히고 구찌오는 가죽을 수입할 수 없게 됩니다. 가죽이 없으니 가방에 들어가는 가죽을 아끼기 위해 구찌오는 가죽대신 삼으로 캔버스 가방을 짜서 베이지색 바탕에 마름모꼴 구찌 고유의 패턴을 넣습니다. 그리고 이때 일본에서 대나무를 수입하여 손잡이로 만든 뱀부백이 탄생하고 오늘날까지도 구찌의 시그니처 백으로 사랑받게 됩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영화배우를 하던 동생 로돌프 구찌가 고향으로 돌아와 가업에 뛰어듭니다. 잘생긴 로돌프 구찌가 매장에서 일하자마자 많은 여성들에게 폭발적인 인기를 끌게 됩니다. 아버지는 피렌체를, 형 알도는 로마를, 동생 로돌프는 밀라노를 맡아 사업을 이끌어 나갑니다. 이때 알도는 구찌 대부분의 시그니처를 만듭니다. 초록 빨강 초록으로 이어지는 구찌 고유의 마크인 '더 웹'을 만들고, 아버지 구찌오 구찌의 이름을 딴 GG로고를 만듭니다. 알도가 이끌었던 시대가 구찌의 황금기로 뉴욕, 파리, 런던까지 해외로 사업을 확장하기 시작합니다.
2. 구찌의 위기 - 파트리시아의 등장
1953년 구찌오 구찌가 72세로 죽고 난 후, 두 형제 알도와 로돌프는 지분은 50%씩 나눕니다. 형 알도의 아들 파울로와 로돌프의 아들 마우리치오가 경영에 참여합니다. 알도의 아들 파올로는 구찌 안에서 디자이너로 성공하고 싶었으나 실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로돌프의 아들 마우리치오는 가업에는 관심이 없고 변호사를 꿈꾸었습니다. 이때 파트리시아 레지아니의 등장으로 구찌에 위기가 닥칩니다. 구찌의 안주인 자리를 노리고 마우리치오에게 접근해서 결혼까지 이르게 됩니다. 하지만 파트리사아가 구찌의 재산을 노린다고 생각했던 알도는 결혼을 반대하며 이 일로 아버지와 아들은 멀어지게 됩니다.
3. 알도와 파울로의 몰락
파트리시아는 삼촌 알도를 찾아가 남편 마우리치오가 구찌 가업을 이을 수 있게 부탁합니다. 알도는 똑똑한 조카 마우리치오를 기꺼이 경영에 참여시키고 사업을 하나하나 알려줍니다. 얼마 뒤 로돌프가 사망하고 마우리치오가 경영권을 승계받습니다. 파올로는 회사를 나와 자신의 이름을 건 브랜드 '파올로 구찌'를 만듭니다. 구찌와 비슷한 로고를 사용하여 가방과 액세서리 등을 저렴하게 판매했고 브랜드 이미지가 훼손되자 구찌의 가치가 훼손되는 걸 두고만 볼 수 없었던 파트리시아는 남편을 구찌의 왕으로 만들기 위해 알도와 파올로를 제거하기로 결심합니다. 파올로에게 아버지 알도의 약점을 찾아오면 구찌 내부에서 파올로의 라인업을 만들어 준다는 약속 합니다. 이에 파올로는 아버지의 탈세 혐의 증거를 공개하고, 결국 알도는 81세에 감옥에 가게 됩니다. 파올로는 파트리시아에게 속아 지분만 마우리치오에게 넘겨주고 회사에서 쫓겨납니다. 이런 사건이 연이어 일어나면서 1980년대 구찌는 제품보다 가문의 분쟁으로 더 유명해집니다. 그러는 동안 브랜드 가치는 망가졌고, 중장년층이 입는 올드한 브랜드 이미지로 전락합니다. 회사의 재정이 어려워지자 마우리치오는 현금을 마련하기 위해 아랍계 회사 Investcorp을 찾아가 알도의 지분을 사달라고 부탁합니다. 그렇게 알도는 자기가 평생 만들고 일구어온 회사에서 조카에 의해 쫓겨납니다. 이때 마우리치오와 파트리시오의 관계도 악화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절반의 지분과 이사회를 장악한 Investcorp은 마무리치오의 경영 능력을 문제 삼고 1993년 CEO 자리에서 내리고 모든 지분을 인수합니다. 이렇게 구찌가문의 가족 경영은 끝이 납니다. 1995년 어느 날 출근을 하던 마우리치오가 파트리시아의 사주를 받은 암살자에 의해 사망합니다. 세기의 악녀 파트리시아는 18년을 복역하고 출소합니다. 출소 후에도 여전히 화려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4. 구찌 제2의 전성기
구찌 일가가 몰락한 뒤 Investcorp은 구찌의 변호사였던 드 솔레를 CEO 자리에 앉히고, 한 무명 디자이너를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합니다. 정통 패션 디자이너 출신이 아니었던 무명의 톰 포드가 수석 디자이너가 되자 구찌의 주가는 하락합니다.그러나 톰 포드는 첫 번째 패션쇼에서 바로 우려를 불식시킵니다. '하이힐은 더 높게, 짧은 치마는 더 짧게'라며 파격적인 섹시함을 선보였습니다. 화려하고 글래머러스한 90년대 패션을 주도하며 구찌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합니다. 2004년 톰 포드가 구찌를 떠나고 구찌는 다시 정체되기 시작합니다. 그 무렵 로고가 드러나지 않는 '로고 리스' 열풍이 불면서 구찌는 매출이 20%씩 빠지며 심각한 경영난에 시달립니다. 2015년 CEO 마르코는 구찌에서 12년을 일했지만,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무명 디자이너 미켈레를 수석 디자이너로 임명합니다. 마르코는 미켈레에게 전임 디자이너가 제작하던 남성 컬렉션을 일주일 안에 완성해서 패션쇼를 진행할 수 있겠냐고 제안합니다. 미켈레는 12년 동안 구찌에서 꿈꿔왔던 패션을 마음껏 선보입니다. 과장된 로고 프린트를 쓰거나 뱀, 호랑이, 나비 등을 그려 넣고, 리본 장식의 블라우스와 시스루 탑을 입은 남성을 등장시킵니다. 톰포드의 구찌는 섹슈얼한 매력을 강조한 반면 미켈레의 구찌는 젠더리스 패션을 주도합니다. 이러한 구찌의 변화에 MZ 세대가 반응하며 MZ가 갖고 싶어 하는 명품의 반열에 오르게 됩니다. 구찌는 2017년 에르메스를, 2018년에는 샤넬을 제치며 2020년부터는 3년 연속 명품 브랜드 가치 2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