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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름에 많이 신는 슬리퍼 중 유행을 크게 타지 않아서 오랫동안 사랑받는 글로벌 슬리퍼를 만드는 기업 버켄스탁. 6대가 넘게 가업을 이어 슬리퍼 하나에 일생을 건 독일의 명품 샌들 생산 기업 버켄스탁의 창업 스토리를 정리해 보겠습니다.

     

    버켄스탁

     

    1. 6대째 가업을 이은 버켄스탁의 창업

    버켄스탁은 1774년 독일의 작은 마을 라겐버그에서 구두장이 요한 아담 버켄스탁이 시작합니다. 이때 우리나라는 조선시대 영조 50년이었고,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운동이 막 시작되었던 시기입니다. 요한은 어릴 때부터 가족의 생계를 위해 교회에서 신발을 수선하는 일로 시작했고, 마을에 작은 제화점을 만들었습니다. 독일은 주로 가문의 가업을 이어가는 전통이 있었기 때문에, 이후 요한의 아들과 손자가 쭉 제화점을 이어 갑니다. 그리고 증손자인 콘래드 버켄스탁에 이르러 가업이 꽃을 피웁니다. 1896년 대도시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두 개의 매장을 열고 본격적으로 사업을 확장합니다. 이때 만든 제품은 목욕탕에서 잘 미끄러지지 않는 기능성 슬리퍼가 주제품이었는데, 더 나아가 인류의 획기적인 발명을 더 해 풋 베드를 만듭니다.

     

    2. 풋 베드의 발명

    오늘날 신발 밑창은 발 모양처럼 굴곡이 있지만, 그 당시 신발 밑창은 모두 평평했습니다. 1896년 콘래드는 사람의 발 아치 모양을 본떠서 밑창을 만듭니다. 이것은 마치 모래사장에 맨발을 쿡 찍으면 남는 모양 그대로 밑창을 만든 것입니다. 밑창이 발 모양처럼 굴곡이 있으면 발을 감싸주기도 하지만, 체중을 발 전체에 분산시켜서 부담을 덜어줍니다. 이를 위해서 해부학과 의학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았고, 또 소재를 엄청나게 연구한 끝에 버켄스탁의 상징 '합성 코르크 풋 베드'를 개발합니다. 코르크는 참나무를 쪄서 만드는데 탄성이 있고, 오래 신으면 사람들의 발 모양에 맞게 조금씩 변형이 됩니다. 콘래드는 풋 베드를 연구하고 알리는 데 평생을 바칩니다. 전국에 강의를 하러 다니고, 신발보다는 풋 베드를 만드는 제조 노하우와 기술 라이선스를 팔았습니다. 연구 개발과 소재를 찾는데 돈을 많이 쓰다 보니 수익은 많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버켄스탁에 돈이 벌리게 된 계기는 제1차 세계대전이었습니다. 전쟁에 참여한 수백만 명의 군인들이 딱딱한 군화를 신고 오랫동안 걷다 보니 발에 통증을 겪고 있었는데, 버켄스탁의 풋 베드를 군화에 넣고 신으면서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고, 이때부터 풋 베드가 엄청나게 팔려나가기 시작합니다.

     

    3. 사업의 확장

    버켄스탁이 밑창으로 인지도가 생기자 콘래드의 아들이 신발에 패션감각을 더하는데 그는 칼 버켄스탁입니다. 아버지 콘래드는 발명가에 장인이었다면, 칼은 사업 수완이 빛났습니다. 칼은 풋 베드 판매뿐만 아니라, 족학 트레이닝 코스 수업을 개설합니다. 이 수업은 신발 판매원, 제화공, 정형외과 의사들에게 인기를 끌었으며, 족학 전문 서적을 출판해서 발에 관한 최고의 교과서가 됩니다. 칼은 이를 적용한 신발을 개발하는데, 이때부터 버켄스탁은 모든 신발에 도시 이름을 넣습니다. 1963년 출시한 버클 두 줄짜리는 슬리퍼는 미국의 애리조나, 한 줄짜리는 스페인의 마드리드, 또 엄지발가락을 조리처럼 끼우는 신발은 그리스의 지제로 정했고 이 제품들은 현재까지도 버켄스탁의 3대 베스트셀러입니다. 1960년대를 기점으로 독일에서 버켄스탁은 국민 신발로 사랑받고 있습니다. 많은 미국인이 유럽에 온천여행을 많이 오던 1966년 어느 날, 미국인 사업가 마고 프레이저가 독일에 와서 온천을 하다가 발을 다치게 되는데 주변 사람들이 버켄스탁을 신어보라고 권유합니다. 마고는 버켄스탁을 신어보자마자 신발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되었고, 미국으로 돌아가서도 버켄스탁을 닳도록 신던 마고는 버켄스탁에 연락해 미국의 독점 수입을 따냅니다. 이로 인해 버켄스탁의 글로벌 진출이 시작되었습니다. 초창기에는 미국의 신발가게에서는 버켄스탁의 입점을 받아주지 않고, 한동안은 미국의 건강용품점에서만 판매되었습니다. 건강용품점의 단골손님이었던 젊은 히피들 사이에서 버켄스탁이 유행하기 시작합니다.

     

    4. 스티브 잡스가 사랑한 버켄스탁

    히피는 1960~1970년대 미국에서 베트남 전쟁을 반대하는 반전주의를 기반으로 등장한 사람들로, 이들은 티셔츠나 찢어진 청바지를 입으며 자유분방한 삶을 추구하며, 평화, 자유, 환경보호를 요구했습니다. 자연주의적 삶을 지향하던 히피는 건강용품점의 단골이었고, 여기서 버켄스탁을 발견하게 됩니다. 미적인 것에만 심취해 있던 당시 패션을 비판하고 실용적인 것을 찾은 히피족들을 일컬어 '버켄스탁 리버럴' 버켄스탁을 신은 진보주의자들이라는 신조어도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때 히피 문화에 심취해 있던 대표적인 인물 애플의 창업자 스티브 잡스가 생전에 버켄스탁을 주야장천 신었고, 얼마 전에는 이 사람이 신었던 버켄스탁 슬리퍼가 경매에서 3억 원에 낙찰되기도 했습니다. 히피들이 버켄스탁을 좋아한 또 다른 이유는 바로 버켄스탁의 자연주의 철학이었습니다. 요즘은 이런 브랜드가 많고 당연하지만, 버켄스탁은 1980년대부터 환경과 지속 가능성에 진심을 다했습니다. 1988년에는 솔벤트를 쓰지 않고 친환경 접착제를 사용하여 제품을 생산했습니다. 접착제 비용은 두 배나 비쌌지만 신발의 품질은 더 좋아졌습니다. 1990년대에는 에너지 소비 감축정잭을 벌여서 생산에 들어가는 에너지를 90% 이상 감축합니다. 또한 재료를 고를 때도 환경에 영향을 주지 않는 재료를 선택했습니다. 지금도 버켄스탁 신발 한 켤레를 만드는데 50명 이상의 손을 거쳐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버켄스탁 풋베드는 모두 독일에 있는 5개의 공장에서 생산되며, 완제품도 포르투갈에서 5% 나머지 95%는 모두 독일에서 생산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환경과 지속 가능성에 진심인 브랜드를 히피들도 사랑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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