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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말에 잘되는 집은 장도 달다'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과거에는 어느 집이나 장을 직접 담가 먹었습니다. 장을 만들려면 콩으로 메주를 띄워서 말리고, 여기에 천일염을 가득 장독대에 넣고 1년 이상 햇볕에 잘 말려 발효를 시킵니다. 여기서 콩 부분은 된장, 국물은 간장이 됩니다. 이 과정은 너무 길고 복잡하며, 정성이 많이 필요해서 만들기가 여간 힘든 게 아니었고 집집마다 맛도 달랐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어렵게 장을 담가 먹는 집은 거의 없습니다. 사 먹는 간장의 시대가 열렸기 때문입니다. 77년째 간장을 만들어오며 간장 시장 점유율 60%를 차지하고 있는 절대강자 샘표를 소개합니다.

     

    샘표

     

     

    1. 사 먹는 간장의 시대를 연 샘표

    1946년 샘표 간장을 창업시킨 박규회 창업주는 명동에서 교복 도매 사업을 해서 번 돈과 은행을 다니던 아들 박승복의 퇴직금을 합쳐 일본인이 운영하던 간장 공장을 인수합니다. 그 이름은 '삼시장유'였습니다. 1954년 박규회 회장이 '샘물처럼 솟아라.'라는 뜻과 맑은 샘물로 만든 깨끗한 이미지를 붙여 '샘표'라는 이름을 짓습니다. 당시 상표권 관련 법이 출시하던 시기였기 때문에 샘표는 국내 식품 브랜드 중 최초로 상표를 등록합니다. 처음에는 간장이 잘 팔리지 않았습니다. 장을 담그는 과정은 며느리가 시어머니에게 비법을 전수받아서 집집마다 대대로 물려지는 문화였습니다. 그런데 젊은 여성이 마릴린먼로 같은 원피스를 입고 간장을 들고 있는 광고가 마치 게으른 사람이나 간장을 사 먹는다는 이미지로 마케팅에 실패합니다. 샘표는 전략을 바꿔 주부들의 마음을 움직이기 위해 주부 사원을 고용하고, 부유한 가정을 대상으로 일대일 방문 판매를 시작합니다. 또한 무료 시식회도 실시했는데 이러한 전략은 당시에 파격적이었습니다. 또한, 샘표 간장 CM송도 제작하고 대대적인 마케팅을 통해 샘표가 장류 업계 1위에 오르게 되며 사 먹는 간장의 시대가 열리게 됩니다. 1960년대 지방에서 서울로 상경하는 인구가 늘면서 아파트 같은 고층 건물이 늘어났고 자연스럽게 집에 마당과 장독대가 없어집니다. 집에서 장을 담글 수 없는 환경이 되면서 사 먹는 간장 수요가 자연스럽게 늘어났고 샘표는 급격하게 성장합니다. 창업주 박규회 회장의 건강이 악화되자 아들 박승복은 55세라는 늦은 나이에 사업을 물려받게 됩니다.

     

    2. 1985년 간장 파동 위기

    극복 도시화로 간장 수요가 증가하면서 천 개가 넘는 간장 브랜드가 시중에 쏟아집니다. 이런 기업 중에는 영세하게 만드는 무허가 간장 공장도 있었는데, 1985년 소금물에 검은 색소를 탄 간장에 대한 뉴스가 보도됩니다. 양조간장 중 일부에 화학제품을 혼합한 이른바 중금속 간장이었는데 샘표는 아니었지만, 시장 1위였던 샘표는 직격탄을 맞게 됩니다. 하루 종일 공장에 항의 전화가 오고, 사람들은 샘표 간장을 하수구에 쏟아 버리며 시위하게 됩니다. 그러자 박규회 회장은 자신 있게 샘표의 공장을 공개하기로 합니다. 공장에는 오전, 오후에 걸쳐 버스가 몇 대씩 출입하며 주부 고객들이 쏟아져 들어옵니다. 박승복 회장이 직접 설비를 소개하고 설명했는데, 깨끗한 공장의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본 고객들은 안심했습니다. 이렇게 간장 파동은 오히려 샘표의 깨끗하고 안전한 제조 과정을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3. 샘표 기업의 철학

    샘표는 창업주 박규회 회장부터 이어 온 기업 철학이 있었는데 그것은 '구성원의 행복을 최우선으로 하는 문화'였습니다. 박승복 회장이 사업을 이어받은 지 얼마 안 된 시절, 유리병을 사용하던 간장 용기를 페트병으로 전환하기로 합니다. 당시 간장병을 수거해서 세척하고 다시 간장을 담아 출고했는데, 이 유리병 세척 과정을 계약직 주부들이 하고 있었습니다. 샘표는 유리병을 세척하는 기계가 들어오기 전날 병을 세척하던 직원들을 모두 모아 정직 직원으로 채용하기로 합니다. 이후에도 감원이나 구조조정으로 직원을 내보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고 합니다. 또한 샘표는 직원들에게 노조가 있어야 직원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고 권유하여 노동조합을 설립했는데, 1980년대 후반 전국의 제조업에서 파업이 일어날 때도 샘표는 노사분규 없이 평화롭게 지나갑니다. 또한 IMF 때도 노조에서 먼저 임금 동결을 제안했고, 이듬해인 1998년 충분한 임금으로 보답했고, 더 많은 인원을 채용할 수 있었습니다. 코로나19 때도 전 직원에게 꽃다발을 전달하고, 인력 채용을 10% 강화했고, 77년간 노사분규가 0건으로 2022년에는 노사협력 대상을 수상했습니다.

     

    4. 샘표의 마케팅 전략 - 숨김 마케팅

    간장만 고집했던 창업주 박규회는 아들에게 절대로 다른 음식을 만들지 말라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박승복 회장은 이를 어기고 1987년 시스코라는 캔 커피 브랜드를 인수하고 출시합니다. 당시에는 샘표의 절대적인 점유율을 믿고 샘표에 기대서 홍보하지만, 사람들은 '커피가 짤 것 같다'는 반응으로 외면했고 커피 사업에 실패하게 됩니다. 이후 샘표는 신사업에 진출할 때 샘표라는 사명은 가리는 브랜드 숨김 마케팅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지금도 잘 팔리고 있는 브랜드 중에는 샘표인지 모르는 브랜드가 많습니다. 파스타와 수프, 소스, 드레싱 등 이탈리아 식재료를 판매하는 '폰타나', 육포 브랜드 '질러', 즉석 카레로 많이 먹는 '티아시아'도 샘표의 브랜드입니다. 이러한 비 간장 제품이 샘표에서 차지하는 매출이 50%가 넘습니다.

     

    5. 샘표의 지속적인 발전

    박승복 회장의 뜻을 잇고 있는 3대 박진선 회장은 공학도였던 만큼 과학적인 연구 개발을 하게 되는데, 단순히 간장이 아닌 발효식품에 대한 연구에 지속적인 투자를 계속합니다. 발효 전문 연구소인 '우리 발효 연구 중심'을 세우고 해마다 매출의 5%를 연구 개발에 투자합니다. 식품 업체가 일반적으로 매출의 1%를 연구 개발에 쓰는 것에 비하면 아주 높은 비율입니다. 그 결과 획기적인 제품 4세대 액상 조미료 '연두'를 출시합니다. 샘표는 원재료 콩에 집중했습니다. 콩은 자체 향과 맛이 강하지 않은 데다 깊은 맛을 내는 아미노산이 멸치나 소고기보다 3배 많다고 합니다. 또 발효할 수 있기 때문에 감칠맛을 극대화하면서도 재료 본연의 맛을 해치지 않습니다. 하지만 처음 연두가 출시되었을 때 사람들의 반응은 시큰둥했습니다. 콩을 발효시킨 몸에 좋은 조미료라고 소개했지만, 사람들은 샘표에서 새로 나온 간장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샘표는 간장의 이미지를 벗기 위해 1년 6개월 동안 리뉴얼을 거쳐 연두의 이름 앞에 요리 에센스라는 명칭을 붙입니다. 간장과 비슷한 색과 향도 없애기 위해 노력하여 색은 연해지고 향은 부드럽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연두는 4세대 조미료 시장을 열었고 국내뿐만 아니라 해외에서도 사랑받게 되었습니다. 현재 샘표는 단지 간장 기업이 아니라 발효식품 기업으로 꾸준히 식품을 연구 개발하고 선보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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