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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독립운동을 펼치며 애국을 실천했던 기업이자 소주 시장을 꽉 잡고 있는 기업이 있습니다. 조국의 광복을 위해 기업을 설립했고 사회에 환원하고자 했던 진로의 창업과 홍보 전략, 사회 공헌 활동을 정리해 보겠습니다.

     

    진로

     

    1. 진로의 창업

    독립을 열망했던 진로의 창업주 장학엽은 평안남도 용강에서 태어납니다. 학교를 졸업하고 그가 보통학교의 교사로 근무하던 시절 일본은 학교에서 조선의 문화를 가르치는 것에 엄격했습니다. 그래서 장학엽은 본인이 존경하던 도산 안창호 선생의 가르침을 인용하여 몰래 학생들을 가르칩니다. 어느 날 학생들과 우리말로 '건학가'를 불렀고, 저녁에 일본인 교장에게 불려 가 모욕을 당하고 사직을 강요받아 교단을 떠나게 됩니다. 이때 장학엽은 '내 손으로 학교를 세우고, 이 나라에 실력 있는 젊은이들을 길러내서 일본 침략자들을 이 땅에서 몰아내리라' 다짐합니다. 1924년 장학엽은 친구들과 돈을 모아 '진천 양조상화'를 설립하고 술의 이름을 '진로'라고 짓습니다. 설립 당시는 작은 양조장에 불과했지만, 소주의 맛과 차별화를 위해 연구했고 특유의 쌉쌀한 맛이 나는 증류식 소주인 '흑국 소주'를 개발합니다. 이 당시 소주는 되나 말로 판매를 해서 술을 사기 위해서는 주전자를 들고 다녔야 했는데, 동생이 술을 외국처럼 병에 담아서 판매하자고 제안합니다. 진로는 소주 최초로 유리병에 담아 출시를 시작했고, 관리도 쉽고 도매상이 취급하기가 쉬웠기 때문에 큰 호응을 얻게 됩니다. 이때 유리병에 진로 라벨을 붙였는데, 이북에서 복을 상징하는 원숭이 두 마리를 그려 넣었습니다. 유리병과 흑국이라는 차별화로 완성된 진로 소주는 큰 성공을 거두고, 장학엽은 원래의 계획대로 이북에 차례로 학교를 설립합니다. 이후 1950년 6.25 전쟁이 터지면서 장학엽은 젊은 날 일궈놓은 사업체와 학교 전 재산을 모두 이북에 남겨둔 채 빈손으로 부산까지 내려오게 됩니다. 기술은 있었지만, 자본금이 없었던 그는 상점에서 본 소주병의 양조장을 찾아갑니다. 양조장 사장은 공장과 설비를, 장학엽은 양조 기술과 판매를 담당하기로 하고 동업을 시작했지만, 사업이 잘되자 양조장 사장은 배신을 합니다.

     

    2. 진로의 홍보 전략

    1953년 휴전이 되자 서울로 올라온 그는 다시 소주 공장에 도전을 하고, 다시 진로 소주를 제조한다. 이때 라벨에서 원숭이를 떼고 남한에서 복을 상징하는 두꺼비로 로고를 바꿔서 두꺼비 표 진로 소주가 첫선을 보이게 됩니다. 당시 서울에도 수많은 소주 업체가 있었기에 도매상에서 진로 소주를 받아주지 않자, 그는 도매상에 찾아다니며 팔리지 않으면 맛이라도 보라고 소주를 떠넘기듯 두고 옵니다. 이러한 마케팅 전략으로 진로 소주는 매출이 급증합니다. 진로는 CM송을 만들고 최초의 애니메이션 광고도 선보입니다. 항공기 한 대를 전세를 내서 진로 소주를 팔고 비행해서 화제 몰이를 했습니다. 소주의 병뚜껑을 따서 안쪽에 두꺼비 로고가 나오면 재봉틀이나 금두꺼비를 주는 경품 행사도 진행했습니다. 이렇게 파격적인 홍보로 진로는 소주 시장에서 점유율을 높였습니다. 소주 업계 1위 진로는 오늘날에도 소주 시장의 60~70%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3. 장학재단 설립과 사회 기여

    장학엽은 초심을 잃지 않고 원래 하고 싶었던 학교 사업에 전념하기로 합니다. 1974년 부천에 우신중학교와 우신고등학교를 나란히 세우고, 각종 지원사업과 장학사업을 이어 나갔습니다. 장학엽은 1975년 경영에서 물러나고 학교 재단을 돌보는 일에 전념했습니다. 또한 부산 용두산에 있는 부산타워를 건설하여 부산시에 기증하며 사회 환원에도 기여했습니다. 그는 진로가 한국인이 만든 술을 한국인이 마셔주면서 세워 올린 기업이라고 말하면서 민족 자본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겠다고 말합니다. 이후 창업주 장학엽은 1985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나며 유언에 따라 그의 재산은 사회 복지 기금으로 환원했습니다.

     

    4. 국민 소주 진로의 부도 - 하이트 진로로 거듭니다.

    창업주의 아들 장진호는 33세의 젊은 나이에 회장으로 취임합니다. 이후 사업을 다각화해서 광고, 유통, 건설, 제약업까지 무리하게 사업을 확장하고, 한때 진로는 재계 20위까지 올라가게 됩니다. 진로는 계열사에 2조 원을 지원했지만, 실적은 바로 나타나지 않았고, 한꺼번에 계열사를 늘리다 보니 모든 계열사가 경영악화 상태가 되었습니다. 그 시기는 마침 1998년 IMF 외환위기를 맞으며 진로는 자금난을 이기지 못해 결국 부도 처리가 됩니다. 이때 법정관리에 들어간 진로를 하이트 맥주가 인수하며 주인이 바뀝니다. 맥주 시장 1위 업계가 소주 시장 1위인 진로와 합병하여 '하이트 진로'로 사명을 바꾸게 됩니다. 하이트는 오리지널 진로 소주를 모티브로 한 '진로이즈백'을 출시하고 원조 CM송으로 홍보했습니다. 두꺼비 로고의 스티커가 붙은 하늘색 병의 '진로이즈백'은 기성세대들에게는 추억의 맛으로, 젊은 세대들에게는 레트로로 인식되면서 출시와 동시에 품귀 현상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주인은 바뀌었지만, 진로 소주는 여전히 높은 매출을 유지하며 하이트 진로의 효자상품이자 국민 소주로서의 명성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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